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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다 하루키 칼럼]동북아 위기 심화에 무력한 일본
    정치 2011. 1. 4. 22:17



    [와다 하루키 칼럼]동북아 위기 심화에 무력한 일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정리 | 고영득 기자



     



    2010년 필자는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에 새로운 역사 인식을 가질 것과 북·일 국교 정상화를 촉구하는 데 집중했다. 한·일 쌍방의 노력으로 8월10일 간 나오토 총리가 담화를 발표,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식을 보였다. 이어 10월에는 한·일 양국 정상 합의에 따라 꾸려진 학자들의 연구그룹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보고서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을 제출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담아 간 총리의 담화를 명확히 했다.


    “20세기 초 일본은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한국병합을 단행했다. 식민지화 과정과 이후 식민지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 및 민족적 원한의 감정이 1945년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한·일관계 정상화를 방해하는 큰 요인의 하나가 됐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한·일 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한·일관계 외엔 모두 악화돼
    공동연구 프로젝트는 한·일정상의 공동선언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바라며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해선 5월에 낸 ‘한국병합 100년 한·일지식인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도 병합 100년이 되는 해에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표명했다. 아울러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도 “북한을 동북아시아 공생복합 네트워크에 참가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한국은 북·일 국교정상화를 환영한다” 등의 문구를 넣은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 정부는 이런 노력을 다하지 못하고 동북아 지역 전체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긴장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극히 유감스러운 사태다.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있다. 일본과 동북아 국가들 간 관계를 보면 한·일관계만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는 나빠지고 있다. 대북 관계가 최악인 상태는 변함이 없으나 여기에 더해 지금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도 센카쿠열도, 북방4도라는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게다가 가장 친밀하다고 여겨졌던 미국과의 관계도 오키나와 기지문제로 상호 불신이 깊어지면서 악화되고 있다고 대다수 일본인은 보고 있다. 이례적이며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실은 복잡하다. 일본인은 미국이 일본군을 물리치고 일본 전토를 점령해 맥아더 사령부하에서 민주화와 비군사화를 추진해준 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다만 두 발의 원자폭탄 피해를 당한 일은 잊지 않았다. 오키나와가 오랫동안 미 군정하에 놓인 것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한 후 미군기지가 남아 있는 것도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일·미 양국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점령 후 65년이 지나고, 작년 오키나와 사람들이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에 대해 참을 수 없다고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일·미관계가 긴장 속에 빠졌다.

    작년 TV에서 자민당의 양심적 의원 가토 고이치가 민주당 정권도 자민당도 후텐마의 해병대 비행장을 헤노코에 이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후텐마 비행장은 지금처럼 오키나와 시민의 생활 한가운데에 존속할 수밖에 없다. 향후 사건이 터지면 후텐마 비행장은 오키나와 시민의 투쟁으로 한순간 기능이 마비되고 폐쇄될 것이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동북아의 안전보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체제를 크게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긴장의 한복판인 한국에도 부담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 후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북한군이 시작한 무력통일 전쟁에서 미군이 가로막아 북한의 의도를 저지함으로써 지금 대한민국이 존재하기에 한국이나 일본은 공히 미국에 큰 사의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좋은 일만 한 게 아니다. 필자는 작년 가을 지인들과 함께한 평화운동 사진집을 냈다. 제목은 <시민이 베트남전쟁과 싸운 1968~1975>. 68년 5월 필자는 동네 역에서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장에서 부상한 미군을 동네 근처 미군병원으로 이송하는 헬리콥터가 1년이 넘도록 지나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마지막을 미·중전쟁으로 치른 미국은 53년 1월에는 병력 350만명의 초군사대국으로 변모했다. 소련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제국주의자와 싸우는 베트남 사람들의 독립전쟁을 호찌민이 주도하는 공산주의자의 침략 확대로 보고 적대시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떠난 후엔 베트남에 들어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괴뢰정권’을 수립하려 했다. 60년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이 형성되자 65년부터 본격적인 전쟁을 개시했다. 이 전쟁만큼이나 정당성이 결여된 전쟁은 없었다. 이 전쟁에 한국군도 참가하면서 자국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의 전쟁기지 역할을 하며 이익을 얻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한 우리는 미군병원에 있는 미군들에게 ‘반전’을 호소했다. 1년 반 정도 지나자 기지 내의 미군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고 우리는 그들이 내는 ‘반전미병신문’을 인쇄했다. 미군병원은 70년 말 폐쇄됐다. 베트남전쟁이 끝나는 데는 5년이 더 걸렸으나 미군은 내부에서 분명히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전쟁을 개시한 미국은 전후 깊은 반성을 했어야 한다. 필자는 68년의 첫 전단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더러운 전쟁은 결국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미국은 인류에 의해 심판대에 오를 것이며 혹독한 처벌을 받을 게 틀림없다. 만일 미국이 죗값을 치르는 일 없이 이 전쟁이 끝난다면 세계 어딘가에 제2의 베트남이 생길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은 그러나 반성하기는커녕 베트남에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 91년 걸프전으로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밀어내는 데 성공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베트남전 상처가 아물었다고 말했다. 냉전과 소련 사회주의체제 종식에서 승리를 확인한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베트남전쟁의 실패를 깡그리 잊고 있었다. 이후 9·11 테러에 이은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이 터졌다.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는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그 어떤 정당성도 없이 테러를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이에 부시 대통령 대신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베트남전쟁의 격전지 케산이라는 이름을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와 함께 거론했을 때 느낀 뼈저림을 떠올리고 있다. 오키나와는 한국전쟁 기지였으나 베트남전쟁의 기지이기도 했다. 이라크전에도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출동했다. 오키나와의 모순이 깊어진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이 균형자 역할로서 동북아 지역 안정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미국의 체제 안에는 군사주의 요소가 있다. 북한은 이를 두려워하고 중국도 반응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나 중국 체제에도 독자적 군사주의가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78년 중국은 베트남에 군사적 교훈을 준다며 공격했다. 베트남은 이를 잊지 않고 있다. 난사군도에서 베트남은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노출돼 있다.

    한편으로 일본은 헌법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국제분쟁을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로 해결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외교적 수단만 사용하는 국가다. 그러나 2011년의 일본은 외교력이 전무하다. 주변 국가들과의 현안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와 영토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과는 납치 및 식민지 지배 청산의 문제가, 미국과는 오키나와 문제가 얽혀 있다. 오키나와 문제는 곧 일·미안보체제의 문제다. 일본은 동북아 위기 속에서 독자적인 공헌은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국으로선 큰 문제다. 정말 머리 아픈 2011년 벽두다.


    경향신문 원문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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